지난 6월 26일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속초를 뒤흔들었다. 오징어 난전에서 혼자 식사하던 여성 고객에게 직원이 "빨리 잡숴라, 너무 오래 있다"며 노골적으로 재촉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오징어 통찜이 나온 지 고작 2분 만의 일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전국민의 공분, 속초시 이미지 실추, 상인회 사과대회, 해당 업소 영업정지.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다른 곳에 있다. 이런 일이 왜 반복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2분 만에 "빨리 잡숴"... 시스템의 문제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몰상식한 사업자" 문제로 치부하면 본질을 놓친다. 오징어 난전 같은 전통적 포장마차의 운영 방식 자체에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스템은 이렇다. 손님이 와서 자리에 앉는다 → 구두로 주문한다 → 음식이 나온다 → 현금으로 계산한다 → 언제 나갈지는 손님 마음. 점주 입장에서는 회전율이 매출에 직결되니까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언제 나갈지 모르는 손님을 보며 속이 타들어가는 거다.
특히 관광지 특성상 손님들은 바다를 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사진도 찍고, SNS에도 올리고. 하지만 점주에게는 그 시간이 기회비용이다.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놓치는 것이니까.
QR 주문,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그렇다면 QR 주문 시스템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오디블리 같은 서비스를 도입하면 정말 "빨리 잡숴"라는 말이 사라질까?
솔직히 말하면, 부분적 해결책일 뿐이다. QR 주문을 도입해도 점주가 갑자기 성인군자가 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손님에게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라고 말할 수 있고, 눈치를 줄 수도 있다. 무례함의 근본 원인인 '사람의 성품'은 기술로 바꿀 수 없으니까.
하지만 기술이 제공하는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첫째, 주문 과정의 투명성이다. QR 주문을 하면 손님이 언제 주문했고, 무엇을 주문했는지가 명확하게 기록된다. 점주가 "언제까지 앉아 있을 건지" 추측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카카오톡 실시간 알림으로 점주의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기존에는 주문을 놓칠까봐 계속 손님 눈치를 봐야 했지만, 자동 알림이 오니까 그런 걱정이 사라진다. 덜 예민해지는 거다.
진짜 게임체인저: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
하지만 QR 주문 시스템의 진짜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갈등을 협력으로 바꾸는 인센티브 구조'다.
오디블리 같은 시스템은 인스타그램 마케팅 기능을 제공한다. 고객이 주문을 완료하면 화면에 "우리 매장 인스타그램 팔로우하고 예쁜 사진 많이 찍어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뜬다. 팔로우하면 다음 주문에서 할인도 받을 수 있고.
이게 뭘 의미하는가? 점주 입장에서 고객이 오래 앉아서 사진 찍는 게 '방해'가 아니라 '마케팅 기회'가 되는 거다. "빨리 나가세요"가 아니라 "사진 많이 찍어서 홍보해주세요"로 바뀌는 것이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마케팅의 위력은 상당하다. 음식업계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 ROI는 투입 1달러당 6.5달러 수익을 낸다는 통계도 있다. 점주들이 이걸 알게 되면 태도가 180도 바뀔 수밖에 없다.
데이터가 가져오는 객관성
또 다른 변화는 데이터 기반 운영이다. 기존에는 점주가 "감"으로 장사했다면, QR 주문 시스템은 모든 걸 수치화한다. 몇 시에 손님이 많이 오는지, 어떤 메뉴가 인기인지, 평균 식사시간이 얼마인지.
이런 데이터가 쌓이면 점주도 더 합리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 시간대는 원래 한산하니까 손님이 천천히 드셔도 괜찮겠네" 하는 식으로. 감정적 판단보다는 객관적 분석에 기반해서 영업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착각하면 안 된다. 기술이 만능은 아니다. QR 주문을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불친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사업자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중요한 건 기술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고객과의 갈등을 줄이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새로운 수익 기회를 만드는 도구로 말이다.
속초시도 이걸 인식해야 한다. 단순히 "친절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상인들에게 QR 주문 시스템 도입을 지원하고, 디지털 마케팅 교육도 함께 제공하는 거다.
미래의 속초 오징어 난전
상상해보자. 5년 후 속초 오징어 난전의 모습을. QR 주문으로 편리하게 음식을 시키고, 점주는 "사진 많이 찍어주세요"라며 웃으면서 인사한다. 고객들은 인스타그램에 멋진 사진을 올리고, 그걸 본 다른 사람들이 또 찾아온다.
갈등이 아니라 협력. 재촉이 아니라 환대. 이게 기술이 만들 수 있는 변화다.
물론 완벽한 해답은 아니다. 여전히 몰상식한 사업자는 있을 것이고, 불친절한 일도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구조적 갈등은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다.
속초 오징어 난전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데 도움은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이다.